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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사람]방 안에 쌓인 50벌의 청바지
| 사진: Unsplash의Alejo Reinoso |
물건은 때로 ‘방패’가 됩니다
가끔은 방문을 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는 현장이 있습니다.
커다란 집에서 오직 작은 방 하나만을 의뢰했던 한 젊은 여성 고객님의 방이 그랬습니다.
쓰레기와 물건이 뒤섞여 발 디딜 틈 없던 그 공간은,
정리되지 않은 방이라기보다
우울이라는 깊은 늪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보루처럼 보였습니다.
1. 비울 게 없는 것이 아니라, 버릴 수 없는 마음입니다
겨울 패딩 10벌, 청바지만 50벌.
누가 봐도 많은 양이었지만, 고객님은 단 한 벌도 비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건 전 남자친구가 사준 거예요.”
“이건 출근하던 시절에 자주 입던 옷이에요.”
그녀에게 옷은 단순한 직물이 아니었습니다.
- 상처받았던 시절을 견디게 해준 위로였고
-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길 수 있게 해준 방패였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물건이 많아질수록 더 안전해지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물건들은 점점 그녀가 다시 세상으로 나갈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2. 정리는 혼자 하는 결심이 아니라, 지지가 필요한 회복입니다
정리를 위해 잠시 물건을 거실로 옮겨두었을 때,
퇴근 후 귀가한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셨습니다.
딸이 어렵게 낸 용기였지만
돌아온 것은 “왜 집을 어지럽히느냐”는 말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
이 방은 단순히 정리되지 않은 공간이 아니라
-
거실에서도, 집 안 어디에서도
마음 놓고 물건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숨을 수 있었던 장소였다는 것을요.
그 방은 쓰레기장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던 피난처였습니다.
3. 공간을 비운다는 건, 삶에 ‘숨구멍’을 내는 일입니다
우울감이나 무기력함 속에서는
정리가 불가능해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를 짓누르던 물건 몇 가지만 덜어내도
마음에는 아주 작은 숨구멍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현장에서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
분류보다 먼저, 쓰레기부터
판단이 필요 없는 것부터 치워
‘나쁜 공기’를 밖으로 내보냅니다.
-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의 나를 위한 공간
추억의 옷도, 언젠가 입을 옷도 아닌
오늘의 내가 앉고, 숨 쉬고,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듭니다.
정리는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회복의 속도에 맞춰 가는 과정입니다.
비누네의 한마디
현장을 마무리하며 저는
그 고객님이 옷장 앞에 쌓인 청바지 무더기 대신,
활짝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정리는 가차 없이 버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나를 가두고 있던 물건의 벽에
최소한의 통로 하나를 내는 일입니다.
혹시 지금,
방 안에 물건을 쌓아두고 숨어 계신가요?
여러분의 용기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 당신께 건네는 질문
- 버리지 못하고 있는 물건에, 혹시 마음의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 정리되지 않은 공간이 사실은 나를 지키는 방패였던 적은 없나요?
- 오늘 단 하나, ‘숨 쉴 자리’를 만든다면 어디부터 비워보고 싶으신가요?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 이야기는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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