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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사람]수십 개의 냄비와 상해버린 밥
| 사진: Unsplash의Mae Mu |
우리가 ‘사재기’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
정리 컨설팅 현장에서 가장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은,
집이 아니라 식(食) 이 무너진 주방을 마주할 때입니다.
최근 방문한 한 가정의 주방은 거실까지 이어진 홈쇼핑 박스와 즉석식품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손녀를 돌보며 직장 다니는 딸을 뒷바라지하는 노부부의 집.
물건 하나하나에는 분명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너무 많은 물건이 되어 있었습니다.
1. 조리 도구의 풍요가 식사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주방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수십 개의 냄비와 프라이팬,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소스들이었습니다.
조리 도구만 보면 언제라도 성대한 식사가 차려질 것 같았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최근 배달된 박스 안에는 대부분 즉석밥과 즉석국.
그리고 밥솥을 여는 순간, 시커멓게 썩어버린 밥이 발견되었습니다.
도구는 넘쳐나는데, 요리는 사라진 주방.
정리가 되지 않은 공간은 결국 ‘요리할 수 없는 주방’ 이 됩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였습니다.
2. 사재기는 ‘사랑’이 아니라 ‘불안’의 흔적입니다
거실까지 쌓여 있던 유통기한 5~6년 지난 식품들.
“혹시 부족할까 봐”, “굶을까 봐”, “해주고 싶어서” 모아둔 것들이었을 겁니다.
사랑이 홈쇼핑의 묶음 판매와 만나는 순간,
집은 생활 공간이 아니라 창고가 됩니다.
-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고
- 그래서 또 사고
- 결국 먹지 못한 채 버려집니다
정리 후 남은 양념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대량 구매로 아낀 돈보다,
버려진 음식과 좁아진 공간이 만들어낸 기회비용이 훨씬 컸습니다.
사재기는 절약이 아니라,
불안을 보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3. ‘많이 가진 주방’이 아니라 ‘지금 쓸 수 있는 주방’으로
사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리 기술이 아니라 식재료가 흐를 수 있는 구조를 되찾는 일입니다.
-
상판 제로 베이스
싱크대 위를 비우고 도마를 펼칠 공간부터 확보하세요.
요리는 마음먹음이 아니라, 공간이 허락할 때 시작됩니다.
-
팬트리 다이어트
묶음 판매 대신, 일주일 안에 소비할 수 있는 양만 들이세요.
-
보이는 수납
즉석식품도 숨기지 말고 세워서 보이게 두세요.
보여야 기억하고, 기억해야 먹을 수 있습니다.
썩은 밥을 치우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물건을 쌓아두지만,
정작 그 사람과 마주 앉아 갓 지은 밥을 먹을 공간은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리는 단순히 버리는 일이 아닙니다.
썩은 밥을 치우고,
그 자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온기를 다시 놓는 일입니다.
4. 생각해보기.
- 혹시 지금 주방에 사두고 잊은 식재료가 있나요?
- “없을까 봐” 샀지만 결국 버린 음식이 떠오르시나요?
- 오늘 딱 하나만 비운다면, 어떤 물건을 먼저 치우고 싶으신가요?
👉 댓글로 당신의 주방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정리는 혼자서보다, 나누며 시작할 때 오래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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