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사람] 아버지의 방

사진: UnsplashDenys Striyeshyn

평생 살림과 거리가 있던 아버님.

아픈 아내를 대신해 장갑을 끼고 집을 돌보던 날들.

하지만 아내의 기억이 흐려질수록, 집안의 질서도 함께 흐릿해집니다.

그리고 아버님 스스로의 공간마저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1. 도망치는 아버님과 ‘숨바꼭질’ 정리

정리를 시작하자, 아버님은 자꾸만 방을 벗어나십니다.

“이건 버릴까요?”라는 질문이 귀찮으셨을 겁니다.

때로는 안 쓰는 물건들을 몰래 주차장 창고로 옮기시기도 했죠.

그 순간, 물건들은 단순한 잡동사니가 아니라

아버님이 지켜온 시간과 선택의 흔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2. 창고가 되어버린 ‘잃어버린 방’

아버님의 방은 사실상 작은 창고였습니다.

책상 위는 잡동사니로 뒤덮여, 좋아하시던 것들을 펼쳐볼 수도 없었죠.

그 방 안을 함께 바라보며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물건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아버님이 돌보아야 할 삶의 무게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을요.


3. “아버님의 공간을 돌려드립시다”

저희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간병인’으로 살아온 아버님께, 아버님 자신을 위한 자리를 돌려드리는 것.

쓸데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장식장 위에는 아버님이 아끼시던 도자기를 올렸습니다.

책상 위는 오직 책과 문구류만 남겼습니다.

햇살이 비치는 책상 앞에서, 아버님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4. 무뚝뚝한 찬사 : “이게 내 방이라고?”

하루 종일 무뚝뚝하시던 아버님이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단정하게 정돈된 공간을 잠시 바라보시더니, 천천히 의자에 앉으셨습니다.

“그냥 청소나 해주고 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

그 공간은 이제 단순한 책상이나 서재가 아닙니다.

아버님이 오롯이 자신을 위해 머무를 수 있는 자리,

잠시라도 나를 잃지 않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마주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아픈 가족을 돌보며 자기 자신을 잊고 살아온 시간 속에서,

정리된 공간 하나가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해주었습니다.

작은 정리 하나가 사람의 마음과 하루를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날 아버님의 표정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기

  • 당신 집에도 사용하지 않지만, 정리하지 못한 물건이 있나요?
  • 잠시 잊고 있던 공간이 있다면, 그곳을 다시 바라볼 기회는 언제였나요?
  • 작은 정리 하나가 공간과 마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 댓글로 당신의 공간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정리는 조금 더 부드럽게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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