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사람] “다 버려!” vs “안 돼!” : 츤데레 아들의 화끈한 효도법

사진: UnsplashLiv Bruce

가끔 현장에 가면, ‘싸움 아닌 싸움’이 벌어지는 집이 있습니다.

문을 열기도 전에 분위기가 느껴지는 집들이 있죠.

최근 방문한 한 댁도 그랬습니다.

집 앞에는 택배 박스가 성벽처럼 쌓여 있었고,

저는 들어서기 전부터 괜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오늘 하루가 쉽지 않겠구나, 싶었거든요.


1. 살림을 ‘새로고침’ 하려는 막내아들

지방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을 아랫집에 모신 막내아들이 정리를 의뢰하셨습니다.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상황이 단번에 보였습니다.

반찬 용기, 커트러리, 냄비, 프라이팬…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브랜드의 새 제품들이 주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하나하나 고르고 고르며 준비했을 아들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첫 마디는 아주 또렷했습니다.

“엄마, 예전 거 다 버려. 이제는 이런 거 써야 건강해!”

말투는 단호했지만, 그 안에는 걱정과 애정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더 안전하게 쓰셨으면 하는 마음이었겠지요.


2. 엄마의 윙크와 ‘비밀 작전’

환경호르몬 걱정 없는 최신 용기,

번쩍이는 올스텐 냄비와 프라이팬들.

아들은 정말 정성을 다해 살림을 바꿔 놓았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조금 달랐습니다.

아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엄마는 제 손을 살짝 잡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저 코팅 프라이팬, 그냥 쓰면 안 될까?

나 저게 제일 편한데…”

말끝에 작은 웃음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찡긋, 아주 장난스럽게 윙크를 하셨죠.

아들은 “다 버려!”라고 호통을 치지만,

엄마는 “아이고, 우리 막내가 최고야” 하며 웃으시면서도

정작 오래 쓰던 국자와 프라이팬은 슬쩍 등 뒤로 숨기셨습니다.

그날 저는 정리보다,

두 분의 숨바꼭질을 지켜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3. 잔소리라는 이름의 사랑을 ‘정리’하다

그날의 정리는,

물건을 치우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사랑을 ‘교통정리’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적적하실까 봐 어항과 화분을 들여놓은 아들의 마음,

아들이 사준 비싼 물건이 아까워서 예전 걸 쓰겠다는 엄마의 마음.

결국 최신 살림들은 제 자리를 잡았고,

엄마가 아끼던 몇 가지 도구는

아들 몰래 ‘상징적인 자리’에 예쁘게 남겨 두었습니다.

정리가 끝난 뒤,

저도 모르게 마음이 꽉 찼던 하루였습니다.


4. 어쩌면 엄마가 지키고 싶었던 건

사실 고백하자면,

전문가인 저조차도 올스텐 프라이팬은 늘 어렵습니다.

예열 온도 조금만 놓치면 금세 눌어붙기 마련이니까요.

아드님의 반짝이는 새 팬들 사이에서

엄마가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건,

어쩌면 ‘팬’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자기 손의 감각,

평생 익숙해진 자기만의 부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쯤 어머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요.

아들이 사준 새 도구들에 조금 익숙해지셨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아들 몰래 숨겨둔 그 코팅 프라이팬으로

능숙하게 밑반찬을 만들고 계실까요.

어떤 도구를 쓰시든,

그 주방에 아들의 사랑과 엄마의 웃음이 함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겠지요.

다시 떠올려도 참,

귀여운 모자 사이였습니다.


💬 생각해보기

정리는 종종,

물건보다 관계를 먼저 마주하게 합니다.

  • 혹시 당신의 집에도, 누군가의 사랑이 담긴 물건이 있나요?
  • 그 물건을 바꾸고 싶을 때, 마음은 충분히 함께 나누고 있나요?
  • 오늘 하나를 남긴다면, ‘편해서’가 아니라 ‘정이 가서’ 남기고 싶은 물건은 무엇일까요?

👉 댓글로 당신의 집 이야기, 가족과의 정리 경험을 들려주세요.

정리는 혼자서보다, 나누며 시작할 때 오래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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