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네 이야기 02] : 엄마 집에 내 방이 남아 있기를 바랐던 마음에 대하여
| 사진: Unsplash의A.Rahmat MN |
1.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서운해졌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시간이 꽤 지난 뒤에도,
엄마 집에 제 방이 남아 있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 방에서 자고 오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가끔 들러 잠시 머무는 정도였고, 굳이 방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제 그 방을 없앤다’는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서운했습니다.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 한쪽이 비어버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 그때는 몰랐던 마음의 정체
지금 돌아보면, 그건 방이 필요해서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 집 어딘가에,
‘내 자리가 하나쯤은 남아 있기를’ 바랐던 마음이었겠지요.
언제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돌아오지 않더라도 돌아올 수는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의 여지 말입니다.
서운함도, 아쉬움도
그때의 제게는 분명한 감정이었으니까요.
3. 정리 현장에서 보게 된 풍경들
정리 일을 하며,
중장년의 부모님 고객님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 집들에는,
자녀가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그대로 남아 있는 방이 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침대,
열리지 않는 서랍,
“네 거니까 못 치워”라는 말과 함께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들입니다.
그 방은 자녀를 기다리는 방이기보다는
아무도 살지 않는 채로 지나가는 공간처럼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4. 주인 없는 방이 남기는 것
주인 없는 방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져갑니다.
부모님의 동선과,
부모님의 생활과,
부모님의 다음 시간을
조금씩 잠식해 갑니다.
그 방은 자녀를 위한 공간이지만
정작 자녀는 그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 공간을 쓰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제야, 예전에 제가 느꼈던 서운함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5.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지금의 저는 그 마음을 이렇게 바라봅니다.
엄마 집에 내 방이 남아 있기를 바랐던 건,
부모님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자식의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 공간을
부모님의 서재로,
부모님의 취미 방으로,
부모님의 쉼터로 쓰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건강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 없는 쓸쓸한 빈방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6. 그래서 요즘,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부모님들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자식 물건은
미안해하지 말고
가져가라고 하셔도 된다고요.
“언제든 가져가”라는 말 대신
정해진 시간을 주고,
자기 물건은 자기가 책임지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더 편안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요.
요즘 부모님들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그래, 그래야지” 하고요.
그 방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
집 안의 공기도 함께 달라지는 걸
직접 느끼실 수 있습니다.
당신께 건네는 질문
혹시, 부모님 집에 남겨둔 내 물건들이 있나요?
이미 쓰지 않으면서도 왠지 그대로 두고 있는 것들 말입니다.
그 방이 지금 누구의 시간을 위해 쓰이고 있는지
한 번쯤 떠올려 보셔도 좋겠습니다.
떠오른 생각이나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 정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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