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사람] 덕질과 미니멀리즘의 공존 : ‘최애’가 주인공이 되는 공간에 대하여
| 사진: Unsplash의 Brandon Salabarría |
무언가를 깊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공간에는 특유의 온도가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두 분도 그랬습니다.
한 분은 화장품 회사에서 패키지를 디자인하는 분이었는데,
처음엔 말투도 표정도 참 귀엽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런데 상담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는 순간,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아까까지는 분명 ‘귀여움’이었는데, 순식간에 ‘관리자’가
되었습니다.
잠깐이었지만, 그 변화가 꽤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한 분은 웹툰 작가였습니다.
두 분은 오래된 친구라고 했는데, 역할이 묘하게 나뉘어 있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집에서는 완전 허당이 되고,
작가 친구는 생활 전반을 자연스럽게 챙기는 쪽이었습니다.
“친구가 다 해주니까요… 저, 아무것도 못하는 척에 고수예요.”
그 말을 하시는데, 두 분이 동시에 웃으셨습니다.
그 웃음이 참 오래된 관계의 느낌이라, 괜히 저까지 같이 웃게 되더라고요.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에는
그들의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습니다.
만화와 게임 캐릭터 굿즈, 피규어, 포스터들이
벽과 선반, 책상 위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죠.
그런데 신기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두 분은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캐릭터는 단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물건은 많고 복잡했지만,
이상하게도 서로의 것이 섞여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누구의 것인지, 저건 누구의 것인지
방 안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또렷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에는 ‘주인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캐릭터가 동시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느낌.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모른 채
그저 여기저기 흩어지는 상태였습니다.
한참을 같이 둘러보다가, 제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지금 이 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으면 하는 건 누구예요?”
두 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그 사이에서 시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리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처럼요.
손에 들었다가 내려놓고,
다시 들어보고,
잠깐 웃고.
그렇게 하나씩 골라내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자꾸 말을 걸게 되더라고요.
“이건 여기 두면 더 귀엽겠다.”
“이 조합 너무 좋은데요?”
어느 순간 저도 같이 덕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지금의 ‘최애’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가장 먼저 바뀐 곳은 침대 머리맡이었습니다.
잠들기 전과 눈을 뜬 직후,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
그곳을 비워내고,
정말 좋아하는 몇 개의 캐릭터만 남겼습니다.
그 순간이 조금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백 개 속에 묻혀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표정이,
갑자기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선택받지 않은 나머지 것들은
카테고리별로 나누어 조심스럽게 담았습니다.
예쁜 상자에 넣어, 하나의 보관 공간으로 정리했습니다.
버린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지금의 자리에서 잠시 물러난 것뿐이었습니다.
“이건 보물창고예요.”
그렇게 말씀드리니
두 분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주인공은 언제든 바뀔 수 있어요.
대신, 이 상자가 넘치지 않게만 지켜주세요.”
정리는 줄이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남길지보다,
무엇을 앞으로 두고 살아갈지 선택하는 일.
미니멀리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방식.
시간이 조금 지나서인지
어떤 물건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흐릿합니다.
하지만 그날,
방 안의 공기가 조금 가벼워졌던 순간은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혹시 당신의 공간도
너무 많은 목소리로 가득 차 있지는 않나요?
오늘 밤,
가장 아끼는 것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잠시 시야 밖으로 옮겨보셔도 좋겠습니다.
그 작은 선택이
당신의 ‘최애’를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드러내
줄 것입니다.
정리는 비우는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을 더 잘 바라보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릅니다.
Q. 당신의 공간에는 지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야 할 ‘주인공’이 분명하게
보이고 있나요?
혹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들 사이에 묻혀
정작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없으신가요?
오늘, 단 하나만 남긴다면
당신은 무엇을 그 자리에 두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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